[야구] 김하성이 이치로도 넘었다… 연속 도루 아시아 신기록 작성, 불멸로 남을까
메이저리그의 2023년을 관통하는 트렌드 중 하나는 바로 ‘뛰는 야구’다. 시즌 전부터 전조가 다 있었다. 모든 룰 개정이 뛰는 야구를 장려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피치 클락을 도입했다. 주자가 없을 때는 15초 안에, 있을 때는 20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그러면서 같이 도입한 게 견제 제한이다. 투수는 한 타석에서 두 번까지만 견제가 가능하다. 즉, 두 번 견제를 당한 주자는 견제가 없다는 판단 하에 자유롭게 뛸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베이스 크기까지 물리적으로 커졌다. 0.01초의 승부에서 주자들이 더 유리하게 바뀐 것이다. 이에 많은 팀들이 뛸 수 있는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고 도루를 장려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동력이 좋은 한국인 선수들도 혜택을 받는다. 배지환(24‧피츠버그)은 5일(한국시간)까지 벌써 17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김하성(28‧샌디에이고)도 11개의 도루를 거머쥐었다.
김하성은 지난해 150경기에서 12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14번 뛰어 12번 성공이니 성공률도 높았다. 그런데 올해는 이런 메이저리그의 트렌드 속에 55경기에서 벌써 11번을 성공해 개인 커리어 하이를 눈앞에 두고 있다.
김하성은 KBO리그 시절에도 잘 뛰던 주자였다. 이른바 도루의 4대 요건으로 불리는 ‘4S’, 스피드, 슬라이딩, 스타트, 센스를 다 갖췄다. 2019년 개인 한 시즌 최다인 33개의 도루를 기록한 것을 비롯, KBO리그 통산 891경기에서 134도루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김하성의 이런 운동능력이 충분히 통한다는 호의적인 스카우팅 리포트를 내리고 있었다.
그런 김하성은 최근 아시아 기록도 썼다. 바로 연속 경기 도루 기록이다. 5월 29일 뉴욕 양키스전부터 6월 4일 시카고 컵스전까지 5경기에서 내리 도루를 기록했다. 6월 3일 컵스전에서 도루가 없었지만 당시 김하성은 교체로 출전해 타석에 들어서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기록이 이어질 수 있었다.
아시아 야구 역사에서 5경기 연속 도루를 성공한 선수는 없었다. 종전 기록은 스즈키 이치로가 2008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기록한 4경기였다. 이 기간 이치로는 5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이치로는 2008년 5월 2일부터 5일까지도 4경기 연속 도루를 기록하며 총 6개의 도 도루를 적립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5경기 연속 성공은 없었다.
이치로는 아시아 야구의 메이저리그 도전 역사에서 가장 잘 뛰는 선수였다. 데뷔 시즌이었던 2001년 157경기에서 56개의 도루를 성공하며 도루왕에 오른 것을 비롯, 30도루 이상만 10시즌 기록했다. 통산 도루 개수는 509개다. 메이저리그에 늦게 데뷔했음에도 불구하고 3000안타-500도루를 동반 달성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아마 이치로의 전성기가 올해였다면, 도루 개수는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 전성기 이치로는 물리적인 걸음도 빨랐지만 무엇보다 상대 타이밍을 잡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다. 피치 클락이 도입된 상황에서 투수들은 견제 타이밍을 잡는 데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이치로는 이런 투수들의 고충을 이용하고도 남을 만한 브레인을 갖춘 선수였다.
그렇다면 김하성의 아시아 기록은 깨질 수 있을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아무리 뛰는 시대가 됐다고 해도 도루 타이밍은 잘 나오지 않는다. 하루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주자 상황도 있고, 경기 상황도 있기 때문이다. 앞에 주자가 있으면 아무리 빠른 주자라고 해도 도루를 하기 어렵다. 여기에 꾸준한 출루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한 번의 도루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성공률도 있어야 한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도 세 경기 연속 도루는 못했다.
올해 아시아 선수 최고의 준족인 배지환 또한 2경기 연속 도루나 혹은 한 경기 2도루는 있어도 3경기 이상 연속 도루는 없었다. 도루라는 게 꾸준하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상징한다. 매 경기 한 번 정도 찾아오는 기회를 잘 살린 김하성의 능력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 페이스라면 20도루 이상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