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 대신 발목 다친 고메스 위한 기도… ‘손의 품격’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이 ‘백태클 패닉’을 극복하고 멀티골을 터뜨렸다. 차범근(66)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넘어선 한국인 유럽 최다 득점 신기록(123골)을 달성했다.

축하할 일이 많은 경기였다. 하지만 손흥민은 골을 넣을 때마다 과한 동작으로 기쁨을 분출하지 않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동작을 취했다. 사흘 전 자신의 백태클로 발목 골절상을 입은 안드레 고메스(26·에버튼)의 쾌유를 기원한 세리머니였다.

손흥민은 7일(한국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라이코 미티치 경기장으로 찾아가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가진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B조 4차전 원정경기에 토트넘 홋스퍼의 후방 왼쪽 공격수로 선발 출전, 1-0으로 앞선 후반 12분과 후반 16분에 연속 골을 넣었다. 토트넘은 4대 0으로 승리했다.

손흥민의 올 시즌 7호 골. 그중 5골을 챔피언스리그에서 쓸어 담았다. 이 대회에서 3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고 있다. 이날 득점으로 한국인 유럽 최다 득점 타이기록(121골)을 경신했다. 손흥민은 1978~1989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 전 감독과 타이기록을 쓰고 있었다. 이제 유럽에서 한국 선수의 최다 득점은 123골로 늘어났다. 손흥민은 이 기록의 보유자다.

토트넘은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16강을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 이날 승리로 중간 전적 2승 1무 1패(승점 7)를 기록했다. 한때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지금은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조의 독일 바이에른 뮌헨은 이날 그리스 올림피아코스를 2대 0으로 잡고 4전 전승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제 B조의 16강 진출권은 1장만 남았다. 최소 2위를 확보해야 이 티켓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손흥민은 득점 행진으로 토트넘에 뒷심을 불어 넣었다.

손흥민은 정신적 충격도 빠르게 털어냈다. 지난 4일 에버튼과 1대 1로 비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상대 미드필더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가했다. 고메스는 넘어지는 과정에서 발목이 부러졌다. 고메스의 부상을 본 손흥민은 충격을 받아 그라운드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 이후, 손흥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하지만 잉글랜드축구협회(FA)는 ‘퇴장이 과하다’는 토트넘의 항소를 받아들여 손흥민에게 내렸던 3경기 출전정지 징계와 주심의 레드카드 판정을 모두 철회했다. 손흥민은 여전히 무거운 표정으로 토트넘의 즈베즈다 원정에 동행했지만, 결국 멀티골로 ‘백태클 패닉’에서 탈출했다.

손흥민은 불과 4분 사이에 두 골을 몰아치는 득점력을 과시했다. 후반 12분 동료 미드필더 델리 알리의 패스를 받아 상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왼발 슛으로 득점했다. 이때 손흥민은 과한 동작으로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고 두 손을 모은 뒤 관중석을 향해 작은 하트를 그렸다. 손흥민은 후반 16분 상대 페널티박스 오른쪽 깊숙한 곳에서 오른발 슛으로 골을 추가해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때도 세리머니는 없었다. 손흥민은 3-0으로 앞선 후반 30분 라이언 세세뇽과 교체됐다.

손흥민은 경기를 마치고 “사고에 정말 미안하다”고 고메스에게 사과한 뒤 “며칠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격려를 받으면서 내가 얼마나 복을 받은 사람인지를 알았다. 더 집중하고 열심히 뛰겠다. 그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