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전문가가 본 손흥민의 상황 “‘왜 그랬냐’는 2차 가해가 더 큰 데미지일 수 있어”
“‘왜 그랬냐’는 2차 가해가 더 큰 데미지일 수 있습니다.”
여자대표팀 멘탈 코치로 활약한 윤영길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교수의 우려였다. ‘한국축구의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이 충격에 빠졌다. 사건은 4일(한국시각) 영국 리버풀 구디슨파크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11라운드에서 나왔다. 선발 출전한 손흥민은 후반 17분 델레 알리의 선제골을 도우며 시즌 4호 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던 후반 34분 심각한 장면이 나왔다. 손흥민이 안드레 고메스를 저지하기 위해 백태클을 했고, 고메스는 넘어지며 마침 돌진하던 세리쥬 오리에와 2차 충돌했다. 고메스는 오른 발목 골절 부상을 입었다.
고메스의 발목이 돌아간 것을 확인한 손흥민은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손흥민 본인도 너무 놀랐다. 제대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퇴장 명령을 받은 손흥민은 팀 스태프들의 부축을 받으며, 욕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손흥민은 말없이 고개를 떨군채 믹스트존을 지나갔다. 영국 언론 디어슬레틱은 ‘손흥민이 휴대폰 전원을 끈 채 아무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후 이야기를 설명했다.
경기 후 토트넘 선수단은 물론 에버턴도 손흥민 위로에 나섰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에버턴 선수들이 손흥민을 위로하기 위해 왔었다”며 “나쁜 감정이 있는 태클은 아니었을 것으로 믿는다. 매우 운이 나빴다”고 했다. 마르코 실바 에버턴 감독은 “손흥민의 태클에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했다. 경기 후 전문가들 역시 “손흥민의 퇴장은 오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제3자인 프랭크 램파드 첼시 감독도 “손흥민의 태클이 부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것은 끔찍하고 가끔 일어나는 사고”라고 했다.
다행히 고메스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고메스의 회복 기원 못지 않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손흥민의 심리 상태였다. 혹시라도 트라우마가 남을 경우, 그의 커리어는 물론 한국축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윤 교수는 일단 걱정만큼 안좋은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교수는 “영향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다칠 수도, 상대가 다칠 수도 있는게 축구선수들의 일상이다. 징계 기간 동안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손흥민이 이런 사건, 사고 하나하나에 영향을 받을만큼 더이상 어리지 않다”고 했다.
고메스 부상 직후 손흥민의 격앙된 반응에 대해서는 “손흥민은 알려진대로 감정표현에 솔직한 선수다. 경기를 지거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우는 모습을 여러차례 봐왔다. 그런 손흥민의 성향이 반영된 행동일 것이다. 물론 충격을 받았겠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다만 우려하는 부분이 있었다. 2차 가해다. 이번 사건 직후 손흥민의 행동에 대해 여러 댓글들이 쏟아졌다. 위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윤 교수는 “주변에 있는 동료들, 지인들은 모두 손흥민을 지지할 것이다. 토트넘이 그렇게 작은 클럽이 아닌만큼 잘 지원해줄 것이다. 다만 ‘왜 그랬냐’는 2차적인 가해가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에버턴 팬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손흥민을 비난할 수 있다. 손흥민 역시 이 부분은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중립적인 누군가가 문제를 삼거나, 비난한다면 크게 와닿을 수 있다. 이 부분을 잘 정리하는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마지막으로 손흥민이 잘 이겨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프로로 생활하면서 내가 다칠 수도, 남이 다칠 수도 있다는 부분을 알게모르게 수용해 왔다. 선수들의 일상 중 하나가 경기 영상을 보는 것인데 그러면서 부상 장면을 수없이 봐왔다”며 “악의적으로 해를 끼친게 아니니까, 극복할 것이다. 이 정도로 심하게 흔들릴 정도의 멘탈이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