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없그왕(메시 없으면 그리에즈만이 왕)’의 탄생

리오넬 메시가 없는 바르셀로나는 ‘머리 깎인 삼손’이었다. 메시가 빠진 최근 6경기서 2무4패. 지난 17일 아틀레틱 클루브와의 라리가 개막전서도 0-1로 덜미를 잡혔다. 메시만 없으면 이기는 법을 모르니 ‘메시FC’라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설상가상 메시와 함께 공격을 이끌던 루이스 수아레스마저 부상으로 빠졌다. 메시와 수아레스가 모두 결장한 경기서 바르셀로나의 성적은 2무1패.

바르셀로나 팬들이 26일 캄 노우에서 열린 레알 베티스와의 홈 개막전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오스만 뎀벨레까지 부상으로 나서지 못하며 바르셀로나는 최전방 3명의 공격수를 완전히 새로 구성해야 했다. 캄 노우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 팬들의 기대는 한 선수에게 쏠렸다. 바로 바르셀로나가 지난 여름 1억2000만 유로(약 1628억원)를 주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영입한 앙투안 그리에즈만.

전반 15분 레알 베티스 나빌 페키르의 슛이 바르셀로나 골망을 갈랐다. 0-1. 불길한 예감에 캄 노우가 얼어붙었다. 진정한 스타는 위기에서 빛나는 법. 그리에즈만이 마침내 응답했다. 전반 40분, 세르지 로베르토와 눈을 맞춘 그리에즈만이 수비 뒤로 돌아들어가는 순간 로베르토의 로빙 패스가 정확한 타이밍에 날아왔다. 그리에즈만이 몸을 날리며 날린 슛이 골키퍼를 뚫고 네트를 갈랐다. 후반 4분 그리에즈만이 또 한 번 해결사로 나섰다. 오른쪽 페널티박스 구석 부근에서 왼발로 감아찬 볼이 골키퍼의 다이빙을 피해 파포스트쪽으로 그림처럼 휘어 들어갔다. 그리에즈만은 “훈련 때 메시가 하는 걸 보고 따라했다”고 말했다. 두 골 모두 그리에즈만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인지를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한 감각적인 골들이었다. 레알 소시에다드와 아틀레티코 유니폼을 입고 14번 캄 노우에 왔지만 한 골도 넣지 못했던 그리에즈만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뛴 첫 캄 노우 경기에서 2골을 터뜨리며 바르셀로나와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에즈만은 골만 넣은 게 아니라 쇼를 즐길 줄도 알았다. 코너 플래그 쪽에 있던 구단 직원한테로 달려간 그리에즈만은 바르셀로나 구단을 상징하는 빨강과 파랑 색종이를 하늘에 뿌리고 두 팔을 치켜올린 채 하늘을 쳐다보는 포즈를 취했다. NBA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가 몸 풀 때 분필가루를 뿌리는 루틴 동작을 따라한 것이다. 메시도 비슷한 포즈의 세리머니를 펼친 적이 있어 메시에게 바치는 오마주이기도 했다.

그리에즈만은 비달의 마지막 골까지 어시스트하며 이날 경기를 온전히 자신의 쇼로 만들었다. 그리에즈만은 골과 도움만으로 존재감을 과시한 건 아니다. 영리하게 공간을 활용했고, 패스가 물 흐르듯이 이어지게 연결 플레이도 완벽하게 소화했다. 마치 10년은 뛴 선수처럼 바르셀로나의 팀 플레이에 녹아 들어갔다. 후스코어드닷컴은 그리에즈만에게 만점에 가까운 9.88점을 매겼다. ‘메없그왕(메시가 없으면 그리에즈만이 왕)’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활약이었다. 바르셀로나는 그리에즈만 덕분에 모처럼 메시 없이도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